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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김성덕의 안경이야기



베토벤 보청기 꼈을까?
이십대 후반부터 난청이 시작된 베토벤은
주위 사람들 모르게 의사를 찾았다.
별다른 효과가 없었던 그는 절망한다.
17세기의 보청기는 고둥이나 금속을 재료로 하여
표주박형태로 소리를 모아주는 집음 기능 정도밖에
할 수 없는 열악한 것으로 짐작된다.

베토벤과 친분이 있었던 멜쩰(메트로놈 발명자)은
깔때기 모양을 본뜬 보청기를 만들어
그에게 선물했지만 효험은 없었다.
서른 초반이 되고 귀가 점점 들리지 않게 되자
유서를 쓰기까지 했던 그는 비엔나의 외곽
하일리겐 쉬타트의 숲길을 수행하듯이
날마다 걸으며 자신의 불행을 스스로 위로했다.
전원속을 걸으며 작곡한 교향곡이
제6번 전원 교향곡이다.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가 주를 이루는 전원은
청각이 아니라 시각으로 써내려간 눈물 나는 작품이다.

베토벤은 귀가 거의 들리지 않게 되자
요양원에 들어가 청력상실의 고통을 잊기 위해
칸트, 괴테, 세익스피어, 호메로스,
심지어 인도철학에 까지 심취한다.
삶의 벼랑 끝에서 붙잡아야 했던 것은
문학이며 철학이었다.

니체는 생이 몰락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예술이라 하지 않았던가?
초등학교 정도의 학습이 전부였던 그에게 이 시기의
독서와 사색은 천재적인 교향곡을 탄생시킨 큰 자양분이 되었을 터이다.

숙명론적인 패배주의를 극복하고
자신의 운명을 하나의 기회로 생각한 것을 보면 그는 분명
스피노자의 장학생이며 니체의 초인사상을
구현한 사람이다.
죽을 것 같은 절망과 두려움을
아모르파티(amor fati)로 이겨냈으니 말이다.
요즘 퇴근길에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을 유투브로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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