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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덕의 안경이야기 - 디테일 하라

몇해 전 미술품 옥셔니어(경매사)의 집에 초대를 받았다.
그 동안 신세를 진 것이 있다며 운보 김기창 선생의
“해상 어작도”라는 그림을 흔쾌히 내어 주었다.
공짜 그림은 절대 받지 않는 다는 나름의 소신을 굽힌 것은 눈앞에 걸려있는 운보의 섬세한 붓 터치 앞에서였다.

이제 막 고기잡이배에 올라 옷소매를 걷어 부치고
돛을 올리기에 여념이 없는 사내들과 배가 출조하기 직전의 고요와 대비되는 기러기들의 역동적인 날개 짓.
기가 막히게 잘 그린 그림이지만 정작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배 앞의 갈대였다.
왜 하필 갈대였을까?
수많은 갈대 중에 한 획 이라도 빼거나 넣는다면
“해상 어작도”라는 그림은 아우라를 내뿜을 수
없을 것만 같다.

폭우가 쏟아지던 그날!
비에 젖을세라 옷깃을 잔뜩 세워
그림을 품에 꼭 껴안고 자동차까지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는 동안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늦은 밤 집에 도착하여 거실 벽에 세워놓은 그림을 바라본
아내의 눈도 휘둥그레지는 모습을 보니 감동한 모습이다.

아름다움, 미적 쾌감, 아우라 같은 감동은
전체 또는 부분의 조화와 질서에서 나오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결코 빼 놓을 수 없는 요소가
바로 디테일이 아니겠는가.

그림에만 디테일이 있으랴.
어느날 막부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칸온지라는 절에 들러
차 한잔을 청하자 훗날 일본 역사상 가장 이름 있는
장군이 된 이시다 미쓰나리가 차를 대접했다.
첫잔은 큰 잔에 따뜻한 차를 따라주었고
두 번째 잔은 중간크기의 잔에 조금 뜨거운 차를
세 번째는 작은 잔에 뜨거운 차를 내놓았다.

도요토미가 그 이유를 묻자
첫 번째는 목이 마르니 빨리 갈증을 풀라는 것이고
둘째 잔은 갈증을 풀었으니 차의 향기를 맡을 수 있게
한 것이며 셋째 잔은 이미 두 잔을 마셨으니 온전히 차향을 음미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그 자리에서 이시다 미쓰나리를
자신의 부하로 삼았고 이시다 미쓰나리는  이를 계기로
명장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운보의 붓 터치를 세심하게 바라보며
디테일은 신의 영역이란 말을 음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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